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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 목 :

아침의 눈에 대한 짧은 단상

게재일 : 2009.07.02 (Thu) 08:04:14 PM

작성자 : blue

No. 582349 추천수 : 2 조회수 : 261

아침의 눈에 대한 짧은 기억.

그냥. 짧은 기억이 났어. 평생 가슴에 묻고 떠올리고 싶지 않지만

어쩔수없이. 겨울이 되면, 그 날이 오면, 나도 모르게 떠올리게 되는 몇가지 기억

> 오랜 이야기엔 눈물도 사라지고 말겠죠 거짓말도 난 배우겠죠

오랜 이야기일까.
하긴, 벌써 세월이 얼마니. 고3이었던 내가 서른 넘짓 어른이 되어버렸으니.
오래전 그날. 잿빛 하늘아래, 쉼없이 함박눈이 펑펑 내리던 그 날
난 우산없이 동교동언덕에서 연대후문까지 쉼없이 걸었었지.
오래전 그날. 눈이 내리던 그 날을 떠올리면 아직도 가슴이 먹먹하고 너무 아파.
그래도 몇년전처럼 눈물이 펑펑 쏟아지지 않는건 보면.. 점점 눈물이 메마를수도 있을까.

> 내일도 만나게 될까요 나 이젠 무뎌져 버린 마음을 이젠 다신 거짓말로 버려두지만은 않기를

하늘아래 내리는 눈이 쌓이는 것을 보면서.
문을 두드리면. 아니, 불이 꺼져있는 이층 오빠의 어두운 창문을 보면서. 나는.. 나는..
밤이 지나고. 아침이 되면. 밤사이에 내려앉은 눈이 녹아버리게 되면
지난 밤의 일들은 모두 꿈이었다는 듯이...
으례 그러셨던 것처럼, 하루가 지나 다시 밤이 되었을때에...
오빠의 이층방에는 희미한 불빛이 보이고..
오빠의 작은 그림자가 드리워지고..
으례 그러셨던 것처럼, 꽃무늬 커텐을 조금 열었다.. 닫았다 하면서.. 장난치실거 같았어.
밤이 지나고. 아침이 되고. 밤사이에 내려앉은 눈이 녹아버리게 되면 말야..
지금 생각해보면. 난... 그날 밤. 오빠의 연희동 담벼락 아래에서 끊임없이 기도했던거 같아.

오빠.. 아니죠.. 우리, 내일 웃으면서 다시........만날 수 있는거죠..?

> 흰 눈이 모두 녹은 후 시간이 흘러 첫 번째 비가 오는 날 비가 내리는 날
나의 노란 우산을 활짝 펼쳐 이 예쁜 꽃으로 딱 한번 울거야

연희동 담벼락에 적힌 수 많은 나의 같은 사랑을 가진 아이들의 흔적이 빠짐없이 맘에 새겼지.
하늘에서 밤새 내리던 거리에도.. 담벼락에도.. 수북히 쌓인 눈을 보면서
오빠.. 오늘만 울게요. 오늘만요.. 오늘만 울게요... 라고 쉼없이 나자신에 되뇌었던 기억이 나..

> 밤을 새 춤추며 내려온 이제 곧 사라질 아침의 눈을 너도 잠시만이라도 보게 된다면 너무 좋을 텐데

나. 그 날 밤, 얼마나 기도를 했는지 몰라.
너무나 갑작스레. 이별을 고하고. 잿빛하늘을 가로질러 떠나버린 오빠가 보고싶어서
난 고3이었고. 오빠 수능시험만 끝나면 자주 오겠다고. 그렇게 수능이 끝나기만 바랬었는데
가끔. 아주 가끔 편지와 종이학만 담아 시험기간에만 어머니께 전달해드렸었는데.
그 사이 나 너무 힘들었었는데... 나 많이 힘들었는데.. 오빠가 너무 보고싶다는 생각밖에 없었는데..
한번이라도 볼 수만 있다면 좋겠다고 했었는데...왜 그 날 밤이 이렇게 사무치게 밀려오는지 몰라.

> 내 손을 잡아줘 난 매일 밤마다 어두운 물살 속으로 빨려 내려 흘러가던 꿈을 꾼거야
가는 손목으로 그려낸 달콤한 향기 난 알아

하지만.. 그땐 많이 어렸었나봐요.
어쩌면 떠나가는 오빠가 나보다 더 많이 울고. 더 많이 아파하고. 더 많이 보고파했을거라는걸
난 어려서 그땐 많이 몰랐었나봐요.
어쩌면 제가 밤새 오빠 꿈을 꾸고. 꿈속에서도 오빠의 손을 잡지 못했음을 알고
베갯잎이 젓도록 울었었는데.. 오빠도 아마 그랬을거라는걸 너무 늦게 알았나봐요.

> 매년 첫 번째 비가 내리는 날 나의 노란 우산을 활짝 펼쳐 이 예쁜 꽃을 네게 줄거야

오빠.
매년 그 날은 되풀이되겠죠.
매년 그 날, 눈이 오기라도 하면 우린 어쩔수없이 가슴에 새겨져버린 그 날을 떠올리게 되겠죠.
기억이란. 떠올리고 싶지 않아도 문득 바람처럼 밀려오니까요..

매년 그 날이 되어도 이젠 울지 않을게요.
눈물이 메마른것이 아니에요. 눈물이 사라지는게 아니에요.

눈물 대신 오빠에게 웃음을 전해줄거에요.
눈물 대신 오빠에게 행복을 전해줄거에요.

우린, 이제 영원할거니까... 우린, 이제 이별하지 않을거니까..

오빠.. 사랑해요.
그 어떤 단어로도 형용할 수 없을만큼... 사랑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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