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전에 올렸던 모아이와 제로의 연관 글에 관심 가져주시고 공감해주시고
더군다나 예전 내 글을 기억해주신 많은 분들께 우선 감사를 드린다.
나를 채우고 있는 서빠의 8할 이상은 음빠라고 단언할 수 있는만큼
이번에는 모아이 싱글의 소리에 대해서 써 보려고 한다.
이 글 역시 대부분의 내용은 철저히 주관에 근거하였으며
내 개인적인 느낌과 생각일 뿐, 주장이나 강요가 아니므로 편하게 읽어주시면 좋겠다.
다른 의견 얼마든지 환영. ^^
글이 쓸 데 없이 길어진 관계로 미리 양해를 구한다...;; 꾸벅.
이번 싱글을 접한 많은 사람들이, 아마 거의 모두가 알고 느끼는 사실을
어쩌면 과장해서 마치 나만 발견한 것 마냥 호들갑을 떤 글일 수도 있겠다.
그렇더라도 너그럽게 넘겨주시면 감사하겠다... ^^;;;
또한 나는 음악을 전문적으로 듣거나 찾아 듣거나 연구, 학습하는 청자가 아니라
들리는대로 이것저것 마구잡이로 듣는 잡식성 피동적 청자라
용어라든지 기법이라든지 장르, 계보, 이런 거 잘 모르고
표현력에 있어서도 상당한 미숙함이 있음을 양지 바라겠다.
(* 사족 : 아까 전 복습하다 발견한 누군가 퍼온 "서태지 오타쿠 맞구나" 글을 읽고
나와 약간 비슷한 느낌을 가진 사람이 또 있다는 게 반갑다.
안 읽어보신 분들은 재밌는 글이니 읽어보시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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태지의 이번 8집 앨범을 그 어느 때보다 오래도록 목마르게 기다려온 만큼
나오기 전에 여러가지 기대와 추측도 분분했고
나 또한 다양하게 예측해보며 무한 삽질도 해 보았지만
막상 뚜껑을 열었을 땐
(핫트랙스의 매장에 틀어놓은 걸로 처음 듣다니.. ㅜ.ㅠ 그러고 싶지 않았건만)
많은 사람들이 그랬듯 다소 어? 의외네? 밝다...? 가볍다....? 하고 어리둥절 했다.
그러나 음악을 듣기 위해 장소를 옮기고 챙겨간 CDP로 듣는 순간
아.... 그래... 태지의 소리다..!! 라고 느꼈다.
밝은 분위기... 밝다 못해 매우 발랄하고 경쾌하고
막 날아갈 것만 같은 분위기이긴 한데
전반적으로 깔린 엇박과 당김음이 많은 리듬감,
그리고 각종 소리들을 가득 눌러담은 태지 특유의 작법이
얘네들 태지의 자식들이 맞구나 하고 나에게 왠지 모를 안도감(?) 같은 것을 주었다.
게다가 02년도부터 김석중군과 꾸준하게 작업하며 이어져 온
일렉트로닉 스타일과 드릴&베이스 기법은
과연 15주년 앨범이 이번 음반의 힌트였음을 감지케 해 주었다.
약 한 달여 전, D-Day 티저 영상에 삽입된 음악을 처음 들었을 때는
그 음악이 태지가 만들었다는 전제를 깔고,
뭔가 태지의 작법이 많이 달라졌다는 느낌이었는데
(좀 더 구체적으로 얘기하자면, 그 티저 영상의 음악은
구조적으로 좀 약간 느슨하달까....
- 안 좋다는 의미가 아니라 왠지 태지 답지 않은 느낌...
태지 스타일의 비트를 바탕으로 한 구조적으로 쌓이고
제대로 조여지고 조립되었다는 느낌이 좀 부족한 듯한.... )
그 며칠 뒤 서컴에 저작권이 있는 음악인의 작품이고
이번 음반과는 관계 없다는 기사를 접하고선 그런가? 싶었다가
이번 음반을 듣고 나서 너무나 태지스러운 느낌을 확실히 받고 나서는
아무래도 그 티저 영상의 음악은
태지 아닌 다른 사람이 작업했을 가능성이 내 안에서 높아졌다.
나는 매번 태지 앨범이 나올 때마다 노래들 안에 숨겨진 들릴듯 말듯한,
그러나 꼭 그 자리에 있어야만 하는 소리들을 찾아내는 재미를 즐기는데
이번에도 역시 그 재미가 여간 아니다.
특히 이번에는 베이스를 태지가 연주했다고 해서
베이스에 더욱 각별히 주의를 하여 듣고 있는데,
이는 내가 16년 전, 난 알아요를 처음 들었을 때 충격 중의 하나가,
새로운 시도와 사운드라는 것과 더불어
기존에 내가 들어보지 못했던 압도적으로 화려한 베이스 때문이었다.
일단 이번 앨범의 베이스에 대한 얘기를 간단하게 언급하자면,
음악을 만드는 태지가 직접 연주한 게 아니었다면 녹음 기간이 좀 더 길어졌겠다 싶도록
그 타이밍이 미묘하면서 복잡하고, 그러면서도 곡의 흐름과 잘 맞아 떨어진다는 것이다.
다른 곡들도 그렇지만 특히 모아이에서,
그 가볍게 통통 튀는 듯한 연주는 곡 전체에 생동감을 더욱 북돋아주고
아슬아슬하게 박자를 맞춰 듣는 이로 하여금 긴장감과 흥을 적절히 공급해 주고 있다.
난 알아요와 같은 화려함은 다소 덜하지만 역시 태지답게
단순히 중심을 잡는 역할이 아닌 멜로디적인 입지도 분명히 가지고 있다.
이번 앨범의 노래들은 많이 언급되었다 시피 유려한 멜로디라인이 살아있는데
밍숭맹숭하게 둥둥거리기만 하는 게 아니라
그 멜로디라인을 매우 유효 적절하게 뒷받침하는 반주를 한다.
그 반면 틱탁을 제외하고는 기타 사운드가 묻혀있는 듯한 느낌이다.
이전 앨범들과는 다르게 기타가 리드한다기 보다는 보조적인 역할이라는 느낌...
오히려 베이스가 더 존재감이 드러난다는 생각까지 들 정도인데...
이는 내가 점점 막귀가 되어감인지,
아니면 이번 싱글에서 두드러지게 나타난 건반사운드 때문인건지는 모르겠다.;;
북공고 미니 콘서트에서는 그나마 좀 들리는데....
원곡에서는 구별해 듣기가 어려운 감이 있다.
음반 구매일인 7월 29일로부터 오늘에 이르기까지 들은 결과
자연을 쪼개고 두들긴다는 태지의 부연설명이 없었더라도 알 수 있을 만큼
무척 분할된 복잡 다양한 리듬과 그 리듬에 맞춰
이제까지 태지 음악에서 흔치 않았던 낯선 정체 불명의 소리들이
유동적이고도 마치 춤을 추듯 그 사이사이에 흘러들어가 있음을 알게 되었다.
귀에 뜨이는 소리는 우선 모아이에서 청아한 물방울 소리와 잘 어울리는 상쾌한 울림의 이펙트.
감히 손으로 연습할 엄두를 못내는 둘-둘-셋-셋의 엇갈린 박자의 박수소리도 그렇거니와,
앨범 전체에 걸쳐 들리는 후두두둑 하고 훑어 내리는 드럼 비트도, 각종 효과음도,
처음 들을 땐 어떨지 몰라도 들을 수록 결코 만만히 볼 쉬운 곡들이 아님을 여실히 느끼게 해 준다.
기사에 났던 폴리네시안 퍼커션은 구분해 내기를 포기했다. (그 소리가 어디부터 어디까진 거야, 대체!)
대신에 인터넷에서 검색에 검색을 거듭해 몇몇 샘플 사운드와 곡들을 들어보았는데
폴리네시아, 즉 태평양 군도의 토속 타악기로서 하와이안풍의 나른한 음악들이 있는가 하면,
매우 원시적이고 리드미컬하며 보다 본능을 자극하는,
우리네의 난타와 어딘지 모르게 일맥상통하는 구석이 있지만 그보다는 덜 정제된 듯한 그런 소리였다.
그렇다면 태지가 말한 태고의 소리에 이 폴리네시안 퍼커션이 한 몫 하고 있는 것은 분명한 것 같다.
태고는 원시라는 말과도 의미가 통할테니까...
그리고 또 주목할만한 소리는 싱글 내 모든 곡에서 들리는
복고적인 70~80년대 풍의 전자 오르간 사운드의 키보드... (오래된 오르간 소리? ^^;;)
그리고 정말 깜짝 놀란 것은 아름답게 반짝거리는 하프소리도 그렇지만
(뒷북이겠지만) 대부분의 후렴구에 흐르는 스트링(클래식 현악) 연주 느낌의 사운드였다.
부클릿에 연주팀 이름이 없었으니 실제 현악 연주는 아니었을테고
아마도 프로그래밍이었겠지만
이 현악 사운드에 의해 곡들의 느낌이 훨씬 부드러워지고
일렉트로닉이면서도 아날로그 적인 감수성을 함유하게 한 듯 싶다.
모아이에서도... 휴먼 드림에서도... 그 현악 사운드가 앞서 말했듯
날아갈듯한 곡 분위기를 실어준 느낌이 든다.
틱탁에서는 딱히 현악이라고 하기는 어렵지만 전반적으로 깔리는 반주는
웅장하면서도 절제가 있어 현악과 비슷한 느낌이 든다.
문득 떠오른 생각. 그렇다!!! 9월에 있을 필하모닉과의 심포니 협연!!!
만일 태지는 미리 심포니 협연을 염두에 두고 현악의 사운드를 곡에 집어 넣었을까?
아니면 넣다 보니 심포니 협연도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던 것일까?
순서가 무엇이 되었든지 간에 아무튼 다시 한 번 느끼지만 태지가 그리는 그림은
나 같은 일개 팬 나부랑이가 감히 가늠도 할 수 없는 정도의 스케일인 것 만큼은 분명하다.
또한 틱탁에서 곡 중간에 내 가슴을 쿵 하고 내려 앉게 만든
단독 피아노 선율을 비롯한 두드러진 건반 사운드들.....
이번 앨범에 건반이 많이 사용된 것의 힌트는 토스카 때의 피아노 연주였던 건가?
과연 이번 심포니에서는 태지의 피아노 연주를 내 눈 앞에서 볼 수 있을 것인가?? (쿠쿵~)
실제 곡 리스트가 어찌될지는 태지와 톨가씨와 연주자들 및 관계자들만이 알겠지만
기사에 의하면 컴백홈은 확실할 것 같고... 내심 팬들 사이에서 기대하고 있는 영원과 제로...
개인적으로는 싱글에 담긴 세 곡 모두 심포니 협연을 한다고 해도 이상하지 않을 것 같다.
(그밖에 나 혼자 생각키에 슬픈아픔이 아마도....?)
이 클래식한 사운드도 어쩌면 태초라는 의미와 통한다고 볼 수 있을까...
클래식 = 고전, 고전 = 옛것, 그리고 복고적인 전자 오르간 소리...
태초란 어쩌면 과거라는 의미의 통칭일 수도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리고 뭐니뭐니해도 휴먼 드림의 백미인
어릴적 소위 "뿅뿅"이라 불리던 전자오락의 향수를 불러일으키는
발랄한 모노톤의 사운드를 빼 놓을 수 없다.
21세기에 최첨단의 악기와 장비를 가지고 80년대 오락기기의 소리를 흉내내다니
아이러니가 아닐 수 없다. 처음 들었을 때는 순간적으로 샘플링인가 싶었는데
듣다보니 엄연한 연주여서 좀 더 충격적으로 다가왔다.
게다가 단순한 8비트 리듬의 역시 80년대 팝송을 연상케하는 드럼이라니!!
(중간 중간 드릴&베이스의 훑는 사운드가 물론 있긴 하지만)
80년대는 70년대 초반 출생자들의 청소년기에 해당된다.
72년에 태어난 서태지는 85년에 밴드 하늘벽을 결성했고 87년에 북공고를 자퇴했고
89년에 시나위에 들어갔다. 그의 음악인생 시작의 중요한 결정적 시기가
모두 80년대에 이루어졌다. 이번 앨범에 깔린 80년대 사운드와 뭔가 관련이 있을까...?
태초의 소리란 혹시 태지가 음악을 하게 된 최초 시기의 소리라는 의미일까...?
태어나기 이전의 소리란 음악을 시작하기 전 들어왔던 소리라는 뜻일까...?
종합해보면 아무래도 태지가 말한 태초의 소리란 복고적 사운드가 아닐까 싶다.
구체적으로는 첨단 일렉트로닉과 복고 회귀의 조화랄까.
이제 우리들의 귀는 무엇이 실제 악기 소리고 무엇이 디지털로 만들어낸 소리인지
구분할 수 없을만큼 정교한 장치들의 소리에 무방비하게 노출되어 있다.
그리고 자연에서는 도저히 존재할 수 없는 인위적이고
복잡기괴한 소리들과 소음들로 가득한 세상속에서 그런 소리들을 당연하게 받아들이며 살고 있다.
미디라는 기계가 발달하면서 음악을 만드는 것은 어떤 면에서는 수월해졌을지 모르겠다.
음악가가 만들고 싶은 소리를 자유자재로 창조하면서 새로운 자극, 새로운 사운드를 만들어내고
실제 악기를 연주하지 않고서도 그 악기 소리를 낼 수 있고
조합하다 보면 어느샌가 음악이라고 부를 수 있을 정도의 소리가 탄생된다.
이러한 과학과 기술력은 음악에 들이는 시간을 대거 단축시켜주었고
음악가들에게는 음악을 짧은 시간에 다작 할 수 있는 계기가 마련되었으며
실제 그 역작용으로 몇 번 듣고 말아버리는 소비성 음악이 대량 생산되는 폐해가 발생하고 있다.
(모든 미디 음악이 그렇다는 의미가 아니라 그런 사례가 많아졌다는 뜻임을 다들 이해하시리라.)
태지도 물론 미디의 수혜자임은 이의를 제기할 수 없을 것이다.
태지의 창작력을 발휘하여 그의 아이디어를 실현시켜줄 그 무엇보다도 강력한 도구로서
매우 광범위하게 활용되고 있을 것이며 본인 스스로도 테크노를 기반에 두고 있다고 인정하였다.
그러나 도구는 도구일 뿐, 그 도구를 누가 어떻게 활용하느냐에 따라
그 결과물은 천차만별이 될 수밖에 없다.
이번 싱글에서 태지는 대부분의 소비성 음악과는 달리
자연이나 복고과의 괴리가 아닌 화합을 추구하였다.
나의 짐작일 뿐이지만 이번 심포니도 그러한 의도를 나타내는 시도일런지도 모른다.
태지는 발전하는 뮤지션임과 동시에 그 발전을 위해 부단한 노력을 아끼지 않는 뮤지션이다.
음 하나 만들어내는 데 헤아릴 수 없을 정도의 횟수로 실험을 하고 시도를 하고 고민을 한다.
그러나 그 발전의 바탕이 되는 과거의 히스토리를 버리지 않고 계속 쌓아 올려
그 위에 한단계 더 발전된 모습을 덧입힌다. (이번에도 역시 레고 이론.. ^^;;;)
최첨단 테크노로 무장한 일렉트로닉 사운드와 세련되고 잘게 분할된 비트는 현재의 발전된 태지이다.
그리고 유치하게 들릴 수도 있는 복고적 사운드와 단순한 비트는 현재의 발전된 태지를 있게 한 토대이다.
이번 싱글에서 태지는 그 상반된 두 사운드를 멋들어지게 하나로 묶었다.
자칫 전혀 어울릴 것 같지 않은 생뚱맞은 과거와 현재를 잘 어울리는 한쌍으로 만들어놓았다.
과거가 없이는 현재도 없다.... 혹은 과거로부터 현재인 지금까지 연속... 이라는 뜻일지도 모르겠다.
태초의 소리는 그래서... 현재의 태지를 있게 한 근본적인 소리.. 즉 복고로의 회귀라고
나름의 결론을 맺어본다.
며칠에 걸쳐 조금씩 쓰다가 정리하다가 생각하다 또 쓰다가 고치다가 한 글이라
너무 길고 무슨말인지 써놓고도 내 스스로 잘 모르겠지만... ^^;;
이런 허접한 글이라도 읽어주시고 의견주시는 분들께 미안하고 고마운 마음을 전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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