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깁니다. 왜 기냐고 물어보신다면, 짧은 글은 다른 데서 쓸만큼 쓴다고 답할 밖에요.
* 오타 및 비문 지적은 언제든 반영합니다.
보통 앨범 발매 4년이 지나 리뷰를 쓰는 것은 뜬금없는 일일지도 모른다. 이미 그 뮤지션의 다음 앨범이 나온 상태라면 더욱 그렇다. 나 역시 4년 전 서태지의 7번째 앨범인
<Issue>를 리뷰하겠다고 약속하지 않았다면 이 리뷰를 쓰지 않았을 가능성이 높다. 그러나, 내 개인적인 상황과 별개로 서태지의 음악은 시간이 지난 뒤 복기를 해 볼 필요가 있다. 그것이 과대평가든 과소평가든, 서태지의 음악은 발표 당시에는 다른 담론들에 휩쓸려 부수적으로 논의되는 경우가 많기 때문이다. 이번에도 서태지가 8집 첫 번째 싱글 <Atomos part MOAI> (이하 <MOAI>)를 발표하자 XTM <끝장토론>같은 프로그램에서는 ‘서태지, 문화 대통령인가 VS 비즈니스 맨인가’ 같은 주제로 토론을 벌이기도 했다. 서태지라는 이름이 붙으면 여전히 음악만 이야기하는 것이 불가능한 상황에서, 시간이 지나 그의 앨범을 돌아보는 것은 그의 음악에 관심있는 사람에게는 한 번 쯤 해볼 만한 일일지도 모른다. 서태지의 5집은 발매 당시 모 평론가가 ‘러닝타임이 짧아서’ 정규 앨범이 아니라는 혹평까지 했지만, 현재는 많은 사람들이 그의 최고작으로 인정하고 있다 (그 평론가는 벡의 이번 신보를 어떻게 생각할지 모르겠다).
특히 <Issue>는 <MOAI>가 나온 지금 서태지의 음악에 관심이 있는 사람이라면 다시 듣는 것이 도움이 될 앨범이다. <Issue>는 서태지가 어떤 과정을 거쳐 <MOAI>를 내놓게 됐는가에 대한 많은 정보를 제공한다. 앞으로 서태지가 내놓을 싱글과 정규 앨범이 <MOAI> 만큼의 완성도를 유지한다고 전제한다면, <MOAI>는 어떤 음악적 지점에 도달한 솔로 뮤지션 서태지의 완결된 스타일을 제시한다. 그리고, <Issue>에는 그것이 스타일화 되기 전의 시도들이 담겨 있다. 그 시도들은 서태지가 <Issue>를 내놓은 이유일지도 모른다. 물론, 서태지가 어떤 의도를 담아 <Issue>를 발표한지는 본인만 알 것이다. 하지만 적어도 결과물만을 본다면, <Issue>는 서태지가 30대 이후 자신의 음악적 스타일을 보다 분명하게 드러낸 첫 번째 앨범이고, 그것은 <MOAI>에서 완결된 형태로 나타난다.
그 시도가 무엇인지 이야기하기 위해서는 먼저 서태지와 아이들 시절 발표했던 ‘시대유감’을 들어 볼 필요가 있다. ‘시대유감’은 서태지 팬이 이 곡에 갖고 있는 감정이나 가요사적인 의미를 제하더라도 꽤 흥미로운 부분들이 많다. 이 곡은 사이프러스 힐, 스매싱 펌킨스, (특히) 비스티 보이즈가 거론됐던 서태지와 아이들의 4집 앨범에서 비슷한 곡이나 해외 뮤지션이 거의 거론되지 않았던 곡이고(하이텔에서 이 곡의 기타 연주 일부가 메탈리카의 어느 곡과 비슷하다고 주장했던 글을 보기는 했다), ‘발해를 꿈꾸며’나 ‘널 지우려 해’처럼 보다 부드러운 멜로디가 섞인 곡도 아니며, ‘하여가’나 ‘교실 이데아’처럼 랩과 록을 결합하지 않았다. 다시 말하면, ‘시대 유감’과 ‘내 맘이야’, ‘지킬 박사와 하이드’는 서태지에게 어떤 트렌디한 장르적 특질 이전에 어떤 곡을 만들어보라고 했을 때 나올 수 있는 록 음악이다. 그 중에서 ‘내 맘이야’는 펑크의 영향을 강하게 받았고, ‘지킬 박사와 하이드’는 서태지의 내면을 어둡게 파고든 곡이다. 이 두 가지는 그 후 서태지의 여러 곡들에서 각각, 혹은 뒤섞여 나오는 성향이기도 하다.
시대유감
그리고, ‘시대유감’은 서태지가 장르적인 측면을 벗겨냈을 때 어떤 구조로 음악을 이해하고 있는지 보여주는 단초다. ‘시대유감’은 각각의 부분마다 음정대신 박자로 곡을 이끈다. ‘자식들 거 되게 시끄럽게 구네... 너의 얼굴가죽은 꿈틀거리고’에서 음정은 별 차이 없는 대신, 계속 박자가 변하면서 곡을 진행한다. 또한 그 다음의 ‘검게 물든 입술’에서는 갑자기 박자를 늦추기도 하고, 곧바로 ‘정직한 사람들의 시대는 갔어’에서는 바로 박자를 빠르게 한다. 그리고, 서태지는 이 변화 많은 보컬 멜로디의 박자를 베이스 연주로 거의 그대로 따라간다. ‘검게 물든 입술 / 정직한 사람들의 시대는 갔어’에서 이를 보다 확실하게 확인할 수 있는데, 그만큼 ‘시대 유감’은 멜로디뿐만 아니라 편곡에 있어서도 리듬의 변화를 강조하고, 이를 통해 곡의 다양한 변화를 시도한다. 실제로 ‘시대유감’은 곡 중반부터 기타로 다양한 리듬을 연주하거나, 록에는 어울리지 않을 것 같은 코러스(‘뚜루뚜루’같은)를 넣기도 한다.
여기에 ‘시대유감’은 곡의 훅을 전면에 배치한다. 곡의 가장 강력한 멜로디인 ‘왜 기다려왔잖아...’을 곡의 맨 앞에 배치해 곡의 앞 부분에 강한 임팩트를 주고, 이를 다시 곡의 중반부와 마지막에 한 번씩 반복하는 식이다. 그래서 ‘왜 기다려왔잖아’는 곡의 포문을 열기도 하고, 곡의 중반을 잇는 후렴구가 되기도 하며, 곡의 클라이막스를 꾸미는 곡이 되기도 한다. 이런 전개가 가능하려면 이 멜로디가 각각의 부분과 유기적으로 맞물려야 하는데, 서태지는 이를 전반부에서는 그 앞에 나름의 기승전결을 갖춘 연주를 통해 자연스럽게 ‘왜 기다려왔잖아..’의 강한 멜로디가 이어지도록 하고, 마지막에는 ‘왜 기다려 왔잖아...’ 이후 같은 멜로디인 ‘바로 오늘이 두 개의 달이...’를 한 번 더 반복하면서 곡의 분위기를 끌어 올리는 식으로 변화를 준다.
Issue의 음악적 이슈
이런 식의 작곡은 기존의 기승전결 식 구성에 다소 변형을 주면서 임팩트 있는 멜로디 중심으로 곡을 재편한 것이라 할 수 있는데, 보통 훅을 쉽게 기억하게 하려는 팝 음악에서 많이 사용된다. 이 자체로 특별할 것은 없다. 그러나, 이런 구성을 극단까지 밀어붙인다면 이야기는 달라진다. 예를 들어 훅으로 사용한 멜로디를 여러 번 반복시키면서 곡을 쉴 새 없이 클라이막스로 이끈다거나, 곡의 멜로디에 따라 편곡을 정교하게 변화시켜서 짧은 멜로디 안에서도 순식간에 기승전결이 이뤄진다면 그렇다. <Issue>는 그렇게 서태지가 ‘시대유감’에서 보여줬던 어떤 작법을 극단까지 밀어붙여 본 앨범이다. ‘Heffy end'부터 ’Zero'까지, <Issue>의 브릿지를 제외한 모든 곡들은 곡 시작부터 강한 훅을 밀어붙인다. 심지어 ‘10월 4일’처럼 어쿠스틱 연주로 끌고 가는 곡도 일반적인 기승전결 대신 ‘왠지 요즘에...’의 멜로디가 진행 된 뒤, ‘네가 내 곁에 없기에...’같은 멜로디가 다시 시작되는 식이다. 또한 이런 곡 시작 부분의 멜로디들은 ‘Live wire'나 ’로보트'가 대표적으로 보여주듯 계속 다른 전개 속에서 시작과 끝을 담당하기도 하고, ‘Zero'의 첫 부분에서 연주되는 기타 멜로디처럼 후반부에 오케스트라 버전으로 편곡 돼 곡의 마지막을 장식하기도 한다.
앨범의 한 두곡이 이런 구성이라면 한 두 번쯤 멜로디의 구성을 바꿔 본 것이라고 할 수 있겠지만, 앨범 전체가 이런 식이라면 그것은 뮤지션의 의도가 강하게 반영된 것이라 해도 무리는 없을 것이다. 특히 이런 구성 안에서 곡의 멜로디에 따라 계속 사운드를 변화 시킨다면 더욱 그렇다. ’Heffy end'나 ‘Live wire'같은 곡들이 보여주듯, <Issue>의 수록곡들은 멜로디에 따라, 혹은 박자의 변화에 따라 사운드가 급격하게 변한다. ’Heffy end'에서 ‘잘못을’과 ‘후회했어’ 사이로 폭발과 고요가 교차하는 식이다. ‘시대유감’에서 멜로디를 그대로 따라가는 베이스로 곡의 변화를 주던 것이 <Issue>에서는 드럼과 리듬 프로그래밍, 그리고 디스토션 기타 등으로 바뀐 것이다. 그만큼 사운드를 통제하기는 더욱 어렵지만, 곡의 변화의 폭 역시 커진다.
즉, 서태지는 <Issue>에서 록적인 사운드 안에서 곡의 모든 부분에서 변화를 추구하고, 동시에 모든 부분에 임팩트를 주는 실험을 하고자한 셈이다. 일반적인 곡들이 멜로디에 의해, 그리고 기승전결의 변화 속에서 어떤 감정을 전달한다면, <Issue>의 곡들은 일반적인 곡의 구성을 파괴한 전개 안에서 멜로디 대신 일정한 멜로디의 구간, 심지어는 음과 음 사이에서 이뤄지는 급격한 변화를 통해 계속 곡을 극단적인 상태로 몰고 가려 한다. 이는 서태지가 <MOAI>의 ‘MOAI'에서 제기한 방법론과도 비슷하다. 물론, 'MOAI'는 그것을 멜로디적인 구성 파고 대신 사운드로 정밀하게 연결하는 방법으로 해결했지만, 그것이 추구하는 큰 방향은 같다. 그 점에서 <Issue>는 <MOAI>가 나올 수 있는 이유다. <Issue>의 극단적인 시도 뒤에 그것을 보다 편안하고 자유롭게 다룰 수 있는 <MOAI>가 나왔다. ‘이모 코어’에서 ‘이모’만 한글로 번역한 듯한 이 해괴한 장르는 서태지의 팬이 아닌 록 팬들에게는 웃음 거리가 됐다. 그리고 그건 사실 당연한 일이긴 했다. 엄연히 ‘이모 코어’라는 말이 있는 마당에 누가 서태지의 설명을 귀담아 들어줄 것인가. 개인적으로도 굳이 <Issue>에 이런 식의 장르를 붙일 필요가 있었나 싶다. 그러나, 서태지의 ‘감성 코어’는 단지 그의 음악을 새롭게 포장하려는 마케팅 용어만은 아니었을 것이다. 그것은 <MOAI>에서 내세운 ‘내츄럴 파운드’가 단지 새로움을 포장하기 위한 마케팅용 단어가 아닌 것과 같다(이에 대해서는 <매거진t>에 쓴 싱글 리뷰나 이 글에 이어질 <MOAI> 리뷰 참고).
서태지의 감성 코어(?)
서태지가 <Issue>를 작업하면서 만들어진 자신만의 스타일을 어떤 단어로 명명하고자 했다면, 그것은 기존 장르 보다는 새로운 말을 찾는 것이 빠르기 때문이다. 하나 하나 따져보면 <Issue>는 이모코어와 그리 가까운 관계는 아니다. 적어도 내가 들은 한도 내에서는 서구의 이모 코어 밴드 중 <Issue>처럼 전 앨범에 걸쳐 멜로디의 구성 파괴나 모든 파트의 멜로디마다 변화를 시도하려는 경우는 없었다(그건 니가 이모코어 앨범을 듣지 않아서 그렇다고 한다면 할 말은 없다). ‘Live wire’ 등에서 펑크와 팝적인 멜로디를 섞었다는 점에서 <Issue>와 이모코어의 연관성을 지적할 수도 있겠지만, 그보다는 차라리 <Issue>에 쓰인 디스토션 기타의 거친 톤과 단단한 드럼의 톤과 다른 이모코어 밴드의 유사성을 지적하는 편이 나을 것이다. ‘Heffy end'와 ’Live wire'가 극단적으로 보여주듯, 기타와 드럼, 그 중에서도 드럼은 <Issue>에서 사운드의 극단적인 변화를 이끈다. ‘로보트'에서 이 곡이 변화하고 있다는 것을 들려주는 것은 멜로디가 아니라 1절과 2절을 각각 다른 톤으로 연주하는 드럼이다. <Issue>에서 이모코어적인 부분은 작법보다는 오히려 장르가 가지고 있는 사운드 특질을 서태지가 자신의 방식으로 사용한 쪽에 방점을 맞춰야 할 것이다.
<Issue>와 다른 뮤지션과의 음악적 연관성을 이야기하려면 차라리 일본의 기타리스트 히데를 언급하는 것이 낫다. <Issue>의 사운드에서 중요한 부분을 차지하는 리듬 프로그래밍은 히데와 함께 밴드를 했던 INA가 담당한 것이고, 기타와 엔지니어링 역시 히데와 함께 했던 기타리스트 KAZ와 엔지니어 에릭 웨스트폴이 담당했다. ’Live wire'에서 엄청난 속도의 리듬 프로그래밍이 등장하면서 곡을 폭발적으로 이끌고 가는 전개는 드릴 앤 베이스라는 장르를 언급하기 보다는 히데의 죽음 뒤 INA가 후반 작업을 마무리했던 <Ja, Zoo> 앨범의 ‘Doubt 97 (Lemoned jelly mix)'를 예로 드는 편이 나을 것이다. 곡의 앞 부분에 훅을 배치한다든가 하는 팝적인 접근 역시 히데가 종종 하던 것이기도 했다. 물론 히데가 했던 음악과 <Issue>의 음악은 다르다. 다만 <Issue>에서 어떤 음악적 연원을 따지려면 먼데서 찾을 것 없이 <Issue>의 앨범 크레딧을 확인하는 편이 빠르다는 것이다.
서태지가 달리는 법
그럼에도 서태지가 굳이 ‘감성 코어’라는 단어를 쓴 것은 그가 이 앨범에서 끊임없이 어떤 카타르시스적인 감정으로 달려가고 있기 때문일 것이다. <Issue>의 첫 곡 ‘Heffy end'를 들어보라. 이 곡은 곡의 시작부터 끝까지 어떤 극단적인 감성의 상태로 달려간다. 곡의 시작부터 디스토션 기타가 터지고, ’내가 (널) 내가 (널).... 이해하지 않지만‘까지 곡은 순식간에 절정으로 달려간다. 그리고 다시 곡은 어쿠스틱 기타 연주와 함께 갑작스럽게 고요해지면서 1절을 시작한 뒤, ’언제나 너의 옆에 난 서 있는 걸‘에서 디스토션 기타로 폭발하며, 이 과정을 보다 복잡하게 한 차례 더 반복한 뒤 ’더 달려 봐‘에서 말 그대로 ’달려‘ 준다. 극단적인 고요 아니면 폭발, 혹은 달리기. 다시 말하면, 서태지는 ’Heffy end'의 모든 부분에 임팩트를 준, 곡의 모든 부분이 하이라이트가 될 수 있도록 설계했다.
이 변화가 가능한 것은 멜로디의 구성 파괴와 극심한 사운드의 변화가 함께 이뤄지기 때문이다. ‘Heffy end'의 도입부에서 사운드는 기타의 변화만으로도 일종의 기승전결을 가진 전개를 끝내고, 그에 이어지는 ’내가 널 널 그렇게 바라보는 걸 누구도 이해하지 않지만 (넌 나를 이해할까)‘는 짧은 시간안에 멜로디의 기승전결을 모두 처리한다. ’Heffy end'는 거의 모든 부분에서 이런 방식으로 곡을 끌고 간다. 곡이 전체적인 전개를 통해 어떤 감정선을 만들어내는 것이 아니라 각각의 부분마다 극단적인 변화를 통해 그만큼 극단적인 변화를 끌어낸다. ‘더 달려봐 더 멀리 뛰어봤자 / 결국 넌 내 앞에 있는 걸’은 'Heffy end'가 보여주는 급격한 변화를 가장 극단적으로 보여주는 부분이다. 가사 그대로 질주하듯 전개되던 사운드는 ‘뛰어봤자’에서 순간적으로 리듬을 바꾸면서 곡의 전개를 바꾼다. 이런식의 구성은 서태지가 'Heffy end', 혹은 <Issue> 전체에서 멜로디의 전체적인 구성을 어떻게 조직하느냐의 문제로 이어진다. 일반적인 곡들은 하나로 연결된 멜로디가 전체적인 흐름을 만들어내지만, 각각의 멜로디가 모두 임팩트를 주려는 <Issue>에서는 그것을 일관된 흐름으로 연결하는 작업이 필요하다. 그 점에서 <Issue>는(<MOAI>가 그러하듯) 직관적인 감정 못지 않게, 혹은 그 이상으로 멜로디와 사운드, 사운드와 사운드의 정밀한 접합이 필요하다. ‘Heffy end'에서 곡의 마지막 부분인 ’이 추악한 이 세상에 두터운 밀랍의 성을 짓고...‘는 ’미소를 지어봐... It’s all right It’s all right‘와 거의 유사하다. 같은 멜로디를 다시 마지막에 쓰면서 악센트를 주기 위해서는 다른 전개가 필요하다. ’이 추악한 이 세상에...‘ 앞에 펼쳐지는 ’네 생명이 이슬처럼...‘은 이를 위한 포석이다. 한창 달려가던 곡이 이 부분에서 갑자기 차분해지고, 다시 사운드를 쌓아 올려 마지막의 절정으로 치닫는다.
물론 이런 전개가 새로운 것은 아니다. 일단 ‘Heffy end'가 정말 형식 파괴를 제대로 했다면, ’미소를 지어봐...‘의 멜로디 대신 도입부의 ’내가 (널) 널...‘을 다용도로 썼어야 했다. ’Heffy end'에서 ‘내가 (널) 널....’은 도입부의 임팩트를 주는 것 외엔 딱히 곡과 유기적으로 맞물리지 못하고 사라진다. 이런 부분에서는 ’Live wire'나 ‘f.m Business'가 보다 매끄럽다. 그러나, ’Heffy end'처럼 곡의 모든 부분에서 기승전결의 과정을 압축해 듣는 사람에게 계속 임팩트를 주려는 곡은 그만큼 멜로디와 멜로디 사이의 연결 고리를 찾는 것이 힘들다. 그것은 마치 A-B-C-D가 아니라 그 과정을 모두 포함하고 있는 A'들을 계속 연결하는 것과 같기 때문이다.
문제는 멜로디와 사운드 양쪽에서 모두 극단적으로 복잡한 ‘Heffy end'의 구성이 과연 무엇을 가져다주느냐는 것이다. 여기에는 서태지의 개인적인 부분과 음악적인 부분 양쪽의 효과가 함께 따른다. <Issue>만큼 서태지가 자신의 감정을 적극적으로 표현한 앨범은 없다고 할 정도로, 서태지는 가사 하나 하나 마다 자신의 감정 상태를 극단적으로 드러낸다. 가사에서 달리면 정말 사운드도 달리고, ’뛰어봤자‘라고 하면 사운드도 멈춘다. 또한 나와 나를 쫓는 어떤 존재는 ’나만 나만‘에서처럼 오버 더빙을 통해 서태지의 여린 보컬 뒤에 거친 보컬을 깔아 놓는 식으로 표현한다. 물론 서태지의 속은 서태지만이 알겠지만, 그는 <Issue>에서 자신의 감정들을 최대한 정확하게 전달하려는 것처럼 보인다.
그것은 서태지의 가사와 함께 그의 어떤 순간들을 계속 바라보게 만든다. <Issue>의 가사들은 곡의 문장 전체로 어떤 명확한 의미를 해석하기 쉽지 않다. 그래도 ‘매년 내 방문 기둥에 엄마와 내가 둘이서 내 키를 체크하지 않게 될 그 무렵부터 / 나의 키와 내 모든 사고가 멈춰버린 건 아닐까’는 이해할 수 있지만, ‘혼탁한 바람에 더 이상 난 볼 수 없네 내가 누군지 여긴 어딘지 / 축복된 인생에 내가 주인공은 아닌가봐 공허한 메아리만이 나를 다그쳐’가 어떤 의미인지 파악하기는 쉽지 않다. 오히려 사운드의 극심한 변화를 통해 그만큼 서태지가 극단적으로 내쏟는 어떤 감정들을 그대로 느끼는 편이 낫다. <Issue>가 팬들과 평론가, 또는 일반 대중이나 락 마니아들 사이에서 각각 다른 평가를 불러 일으킨 이유 중 하나는 이 때문일 것이다. ‘시대유감’은 물론 ‘난 알아요’부터 'Heffy end'까지 서태지의 모든 곡을 알고, 그의 음악적인 정서를 알고 있는 사람들은 그가 감정을 내쏟는 순간마다 그 감정에 몰입했을 것이다.
이런 부분을 제외한다면, <Issue>에서 서태지가 보여준 방법론은 곡의 모든 부분을 보다
임팩트있게 들리도록 만든다. <Issue>는 사운드적인 스타일을 따지면 록이지만, 어떤 사람
들에게든 쉽게 소리를 전달한다는 부분에서는 팝(서구의 음악 장르로서의 팝이 아닌
‘popular song'으로서의 그 팝)이다. 멜로디의 모든 부분들이 하나의 감정을 극단적으로 전달하는 것은 곧 모든 멜로디를 들리게 한다는 것과 같다. 메이저 팝계에서 가장 먼저 멜로디의 구성 파괴가 활발하게 일어난 것 역시 어떻게 하면 짧은 시간 안에 보다 많은 멜로디를 효과적으로 듣는 사람에게 전달할 수 있을까하는 연구에서 나온 것이다. 한 곡이 몇 개의 멜로디만으로 한 곡을 끝낼 수 있다면, 그리고 거기에 초반부터 귀를 잡아끌 수 있는 훅까지 제시할 수 있다면 그 곡의 대중성은 보다 좋아질 것이다. 서태지는 그것을 록 사운드로 집요하게 시도했다.
조각난 멜로디들을 모으다
물론 이런 구성이 서태지의 내적인 필요 때문인지, 혹은 대중성을 염두에 둔 것인지, 음악 형식에 대한 집착 때문에 나온 것인지는 알 수 없다. 오히려 흥미로운 것은 이런 과정에서 나온 어떤 결과물이다. ‘Heffy end'의 멜로디를 다시 한 번 살펴보라. 이 곡의 멜로디는 각각의 부분은 물론, 한 소절 안에서도 극단적으로 짧은 멜로디의 반복으로 이뤄져 있다. ’So.. 네 입술 속에 / 그 속에 / 나의 눈물을 / 흘리게 해줘 / 난 늘 곁에 / 네 곁에...‘같은 부분은 실질적으로 ’네 입술속에‘ 하나를 박자를 조금씩 다르게 하며 한 소절을 만들었다 해도 과언이 아니다. ’Heffy end'가 현란한 변화를 보여주는 것은 역설적으로 그런 변화가 없으면 진행이 불가능하기 때문이다. 즉, 서태지는 극단적으로 쪼개진 짧은 멜로디들을 극단적인 변화와 극단적인 구성으로 그것을 대중에게 들리게, 혹은 자신의 감정을 표현할 수 있게 만든 것이다. 사운드에 있어서는 이보다 더 극단적인 변화를 추구하는 ‘MOAI'에서도 이런 식의 멜로디를 쓰지는 않았다.
이것은 서태지가 <Issue>를 만들 당시 어떤 멜로디를 만들어내지 못할 만큼 감정적으로 힘들었기 때문일 수도 있고, 아주 극단적인 실험을 하고 싶어서였을 수도 있다. 하지만 이 부분은 역시 서태지 본인만이 알 일이고, 중요한 것은 이런 태도로 만든 <Issue>가 어떤 결과물을 냈느냐는 것이다. 내가 <Issue>에 대해 동의하지 못하는 부분은 여기서부터다. 여기까지 글을 읽어준 사람들을 위해 간단하게 말한다면, 나는 <Issue>를 서태지의 최악의 앨범이라고 생각한다. 보다 정확하게 말한다면, 그 해 내 개인적으로 뽑은 앨범에 <Issue>는 들어있지 않다.
<Issue>를 반대하는 이유
물론 서태지는 <Issue>를 만들어 봤기 때문에 <MOAI>도 가능했을 것이다. 하지만 개별적인 앨범으로 본다면 <Issue>는 여러 문제를 안고 있다. 가장 기본적으로, 서태지가 <Issue>에서 추구한 극단적인 변화는 보다 많은 사운드가 필요하다. 그것은 <MOAI>는 물론 ‘Take 2'와 ’Take 4' 등이 잘 보여줬다. 하지만 <Issue>는 그것을 록 밴드의 사운드와 리듬 프로그래밍, 약간의 이펙트 정도로 해결하려 한다. 물론 그것만으로도 이런 시도를 할 수는 있을 것이다. 하지만 그럴 때는 더욱 곡의 구조와 사운드의 변화에 대한 정밀한 연구가 필요하다. 하지만 <Issue>의 수록곡들은 몇 몇 곡을 제외한다면 그 연결에서 결코 만족스럽지 않다. 그것은 스킬의 문제보다는 오히려 집요함의 문제일 수도 있다. 계속 이어질 글에서 각각의 곡을 리뷰하며 언급하겠지만, 내 기준에서 서태지의 시도가 제대로 완결을 맺은 곡은 ‘Heffy end', ’Live wire', 'f.m business' 정도다. 그 외의 곡들에서 서태지는 집요함만이 빚어낼 수 있는 어떤 완성도에 도달하지 못하면서 자신의 시도가 가져올 효과들을 오히려 단점으로 만들어 버린다. 이 대표적인 예가 ‘Victim'과 ’10월 4일‘이다. 구성만으로 볼 때 ’Victim'은 ‘Heffy end'와 비슷하다. 시작부터 임팩트를 주는 디스토션 기타 연주가 나오고, 곧이어 오버 더빙 돼 멜로디를 강조하는 ’Sexual assault'가 등장한다. 또한 ‘Heffy end'가 그랬던 것처럼 'Victim'의 멜로디는 ’Sexual assault.... 구토를 하는 너‘에서 분명하게 드러나듯 짧은 멜로디를 계속해서 반복하고, 역시 'Heffy end'가 그랬던 것처럼 후렴구의 멜로디가 분위기를 고요하게 반전 시킨 간주 뒤에 등장해 곡을 마무리하는 역할을 한다.
그러나, ‘Heffy end'가 남들이 뭐라 하건 서태지의 ’감성 코어‘가 이것이다라고 말할 수 있는 완성도를 보여준다면, ’Victim'은 ‘감성 코어’와 다른 평범한 곡들의 차이가 무엇인지 의아하게 만든다. ‘Heffy end'는 음절 하나하나에 극단적인 변화를 주면서 간단한 멜로디로도고 곡을 끌고 갈 수 있었다. 하지만 ’Victim'은 2절이 끝날 때 까지 거의 ‘Cut & Paste' 수준의 전개를 보여준다. 'Just another victim... 아이야’의 1절부터 후렴구까지, 다시 ‘Just another attendant... They are not hers'는 똑같다. ’Heffy end'처럼 한 소절의 멜로디에서 변하는 것은 커녕, 1절과 2절의 변화도 없다. 요즘 왠만한 곡들도 1절과 2절을 이렇게 똑같이 전개하지는 않는다. 설사 그렇다 해도 ‘Victim'처럼 적나라하게 곡의 문제가 드러나지는 않는다. 누구나 ’Just another victim 너는 네 엄마에게 네 아빠에게‘의 펑키한 리듬을 즐길 수는 있다. 하지만 그 멜로디를 별다른 변화 없이 몇 번씩 반복하는 것만으로 1,2절 전체를 채운 곡을 듣는 것이 즐거운 일이기는 쉽지 않다. 특히 문제가 되는 것은 후렴구다. ‘Sexual Assault / 넌 타인의 / 미친 법에 / 저무는가 / Sexual Assault / 넌 넥타이에 / 목 졸린 채 / 구토를 하는 너’로 구성된 이 곡의 후렴구는 실질적으로 ‘Sexual assault'를 조금씩 리듬만 바꿔서 반복하는 것에 가까운데, 이렇게 짧게 소리 지르는 멜로디를 몇 번씩 반복하는 것만으로 좋은 후렴구가 완성되리라 기대하는 것은 무리다. ’Heffy end'처럼 짧은 멜로디를 다채롭게 변화시키는 것은 실험이 될 수 있지만, 짧은 멜로디에 맞춰 일렉트릭 기타를 몇 번 쳐주는 것을 그대로 반복하는 것은 실험이 아니라 ‘서태지’라는 이름을 생각하면 이해하기 힘든 안이함이다.
강조와 강요의 사이
물론 ‘Victim'에도 변화는 있다. 1절이 끝난 뒤 일렉트릭 기타를 뺀 채 보컬에 이펙트를 걸어 ’No more murder Stop the slaughter‘를 외치는 부분이다. 이 부분에서 갑자기 곡의 분위기를 떨어뜨리면서 강하게 치고 들어오는 후렴구와 대비를 이룬다. 그러나, ’Heffy end'나 ‘Live wire'가 한 소절의 멜로디 안에서도 사운드든 리듬이든 화려하게 변화하면서 곡의흐름을 이끌어가는 것과 달리 후렴구를 꾸며주기 위해 마치 샘플링을 삽입한 것처럼 단순하게 삽입된 부분일 뿐이다. 이제 막 신나게 시작된 곡이 왜 갑자기 그 흐름을 멈추고 그런 전개를 보여줘야할 이유를 찾기는 어렵다. 특히 2절 이후의 전개는 변화를 위한 변화라 해도 할 말이 없는 부분이다. 2절의 후렴구에서 강하게 마무리된 곡은 후렴구 끝 부분부터 분위기를 바꿔 서서히 흐름을 끌어 올리며 다시 후렴구를 등장시킨다. 하지만 여기서 강하게 치고 나가는 후렴구를 다시 고요한 분위기로 바꾸는 것은 멜로디의 맥락에 따른 자연스러운 변화나, <MOAI>처럼 사운드의 치밀한 연결을 통해서가 아니다. 'Victim'에서 서태지는 후렴구의 마지막 음을 길게 늘이고, 디스토션 기타의 파장으로 곡 전체를 뒤덮은 다음, 거기서 곡을 ’다시‘ 시작하고 있다. 그것은 마치 영화에서 페이드 인과 페이드 아웃으로 씬을 연결하는 것과 같다. 영상이 있는 컷과 컷을 절묘하게 연결하는 것은 감독의 능력 나름이지만, 페이드 아웃으로 영상을 가린 뒤 페이드 인으로 다음 씬으로 넘어가는 것은 감독이라면 누구나 할 수 있는 일이다. 또한 경우에 맞지 않는 페이드 아웃과 페이드 인은 오히려 영화의 완성도를 떨어뜨릴 수도 있다. 차라리 2절의 후렴구 뒤에 아예 ’싸늘한 너의 가슴 속은...‘으로 마무리 했다면 곡의 속도감은 어느 정도 유지할 수 있었을 것이다. 하지만 ’Victim'은 길고 긴 간주와 브릿지 멜로디를 통해 애써 ‘Sexual assault'를 클라이막스로 만들면서 곡의 집중력도 떨어뜨리고 있다. 물론 이런 전개를 선택한데는 이유가 있을 것이다. 2절의 후렴구와 마지막 후렴구 사이에 있는 간주는 그 구간 안에서 기승전결의 구조를 갖고 곡의 흐름을 끌어 올린다. 2절 후렴구 뒤에 곧바로 이어지는 편곡에서는 사운드가 하나씩 쌓여 나름의 절정으로 가고, 그 뒤의 멜로디 역시 같은 방식으로 곡의 흐름을 끌어 올린다.
이는 ’Heffy end'의 간주와 유사한 방식이지만, 그 완성도는 다르다. 그리고, 그 다른 완성도는 ‘Victim'의 멜로디를 ‘강조’가 아닌 ‘강요’하는 것으로 만든다. 앨범 전체적으로 간단한 멜로디에 코러스를 입혀 계속 강조하는 <Issue>의 멜로디라인은 그것이 치밀한 구성 속에 이뤄질 때는 곡의 모든 순간에 임팩트를 줄 수 있는 것이 되지만, 그렇지 못할 때는 단순한 멜로디에 더 많은 목소리를 입혀 청자에게 ‘들리도록’ 강요하는 것처럼 느껴질 수도 있다. 이는 <Issue>의 중요한 문제 중 하나다. 모든 순간마다 임팩트를 주려고 하고, 멜로디의 구성 파괴와 현란한 변화가 한꺼번에 겹치면서, <Issue>는 그것들이 조금이라도 빗나가거나, 치밀함이 떨어지는 순간 그것들을 위해 포기한 음악의 어떤 부분들이 강박적으로 다가온다. 그것은 듣는 사람에 따라 매우 실험적으로 느낄 수도 있지만, ‘대중성을 노리고 나온 음악’이라는 말까지 들었던 ‘MOAI'와는 매우 다른 부분이다.
강조가 아닌 강요는 ‘Victim' 이전의 스킷인 ’Nothing'에서도 드러난다. 페미니즘에 대한 극단적인 거부감을 드러내는 ‘Nothing'은 ’Victim'이 여성 문제를 다루는 곡이라는 것을 분명하게 한다. 하지만 그 주제를 분명하게 하는 대신 해석의 틀도 좁혀 놓는다. 페미니즘 문제를 단지 페미니즘을 둘러싼 남녀의 대립 보다는 보다 다양한 관점에서 해석할 수 있도록 여지를 주는 것이 더 좋지 않았을까. 적어도 내가 해석하기엔, ‘Victim'은 낙태 문제와 더불어 한국에서 여성으로 자란다는 것, 또한 국가 속에서 여성이 가지는 위치를 골고루 건드리고 있다. <Issue>를 제외하면, 서태지는 어느 앨범에서도 이 정도로 자신의 메시지를 직접 전달하려 하지 않았다.
신기하거나 의아하거나
서태지가 <Issue>에서 왜 이런 태도를 가지게 된 것인지는 알 수 없다. 하지만 ‘10월 4일’은 그것이 어떤 이상한 결과를 만들어낸다는 것만큼은 보여준다. ‘10월 4일’은 <Issue>에서 유일하게 어쿠스틱 사운드로만 만들어진 곡이다. 그만큼 이 앨범이 보여주는 복잡다단한 변화와는 거리가 있다. ‘왠지 요즘에 난 그 소녀가...’같은 1절의 멜로디 역시 짧은 멜로디를 반복하곤 하는 다른 곡들과 거리가 있다. 그리고, 1절과 후렴구까지의 결과물은 좋은 편이다. 복잡한 사운드로 가득한 이 앨범에서 한 차례 쉬어주는 역할을 할 뿐만 아니라, 어쿠스틱 기타의 연주와 함께 흘러가듯 전개되는 멜로디 라인은 자연스럽게 ‘네가 내 곁에 없기에...’같은 후렴구와 연결 되면서 ‘너는 여우 같아’를 자연스럽게 클라이막스로 만든다. 평범하지만 자연스러운 멜로디의 힘이랄까. 또한 서태지의 미성 역시 깨끗한 포크의 감성과 잘 어울리면서 말 그대로 ‘맑은’ 감성을 불어 넣는다. 그런데 흥미로운 (혹은 의아한) 부분은 그 다음이다. 우선 2절. ‘잠깐 내가 잠든 사이에 / 넌 내 귓가에 / 속삭였어 / 어째서 넌 / 날 잡지도 / 않았었냐고 / 원망했어’는 거의 같은 음들의 반복이다. 또한 그 사이에 들어가는 편곡이라곤 그 멜로디에 보조를 맞추는 몇 개의 기타 음이 반복될 뿐이다. 일반적인 전개라면 단순하더라도 ‘왠지 요즘에...’의 멜로디를 반복한 뒤 ‘네가 내 곁에 없기에...’와 ‘네가 없기에 네가 없기에’를 이어 부를 것이다. 그렇다면 무난하게 한 곡을 끌고 갈 수 있다. 하지만 서태지는 마치 작곡 경험이 전혀 없는 사람이나 쓸 법한 멜로디 구성을 2절에 넣은 것이다.
여기에는 이유가 있다. ‘잠깐 내가 잠든 사이에...’의 멜로디 뒤에 이어지는 ‘내겐 네가 너무 맑아서 말 못해서’의 멜로디는 앞 부분에 비해 보다 강하게 곡을 치고 들어오고, ‘10월 4일’은 이 순간부터 첫 번째 클라이막스에 도달한다. 즉, ‘잠깐 내가 잠든 사이에...’ 부분은 그 다음에 이어질 멜로디를 더욱 극적으로 꾸미는 역할을 한다. 이는 ‘Heffy end'나 ’Victim'에서 곡의 2절이 끝난 뒤 클라이막스를 위해 의도적으로 고요한 분위기를 연출하는 것과 비슷하다. 단조롭게 멜로디가 반복되다가 순간적으로 강한 멜로디가 들어올수록 그 대비 효과는 크다. 그러나, 어쿠스틱 곡인 ‘10월 4일’은 이 대비 효과를 증폭시킬 어떤 사운드도 없다. 대비의 효과가 크지 않을 때, 이런 전개는 오히려 자연스럽게 이어지던 곡의 흐름을 막을 뿐이다. 이런 문제는 특히 2절의 후렴구까지 모두 끝난 뒤부터 더욱 두드러지게 나타난다. 2절 후반부에 ‘네가 없기에 네가 없기에...’의 멜로디가 모두 나온 뒤부터, ‘10월 4일’은 더 이상 들려줄 멜로디가 없다. 또한 편곡 역시 어쿠스틱 기타에 베이스와 드럼이 붙으면서 곡 전체가 클라이막스에 도달한 상태다. 실제로 이 곡의 사운드는 점차 소리가 고요해지면서 2분 45초경 완전히 종료된다. ‘10월 4일’은 이 상태로 끝났어도 충분하다. 2분 45초면 러닝타임이 지나칠 정도로 짧다거나 한 것도 아니다. 이런 곡은 보통 곡과 곡을 잇는 소품 정도 아닌가.
하지만 서태지는 이 곡에서도 다시 후렴구를 등장시키며 또 한 번 곡의 흐름을 끌어 올린다. 물론 그럴 수는 있다. 그러나 어떤 정교한 변화가 아니라 곡이 마무리된 뒤 다시 그 멜로디와 사운드를 들려주는 것은 사족에 가깝다. 이 과정을 통해 ‘10월 4일’의 멜로디는 듣는 사람에게 한 번 더 강조(혹은 강요)될 것이다. 또한 ‘네가 내 곁에 없기에....너는 여우같아’처럼 짧은 시간 동안에도 클라이막스로 가는 멜로디는 듣는 사람의 기억에 쉽게 남을 것이고, 그 중 많은 사람들이 좋은 멜로디라고 생각할 수도 있다. 그러나, 그 부분을 기억하고 따라 부르는 것과 곡 전체를 감상하는 것은 다르다.
‘Zero'는 대곡인가
이 문제를 또 다른 방식으로 드러내는 곡이 ‘Zero'다. 물론 ’Zero'는 ‘Victim'이나 ’10월 4일‘보다는 좋은 곡이다. 좀 더 자세하게 말한다면, ’Zero'는 아주 좋은 곡이 될 수도 있었다. ‘Zero'는 <Issue> 안에서 ’Heffy end'와 쌍생아와 같은 역할을 한다. ‘Heffy end'와 비슷한 방식으로 만들어졌지만 그것이 지향하는 분위기는 정 반대로 흘러간다. ’Heffy end'가 강렬한 사운드 속에서 끊임없이 변화하는 사운드로 순간순간 강한 임팩트를 주려한다면, ‘Zero'는 곡의 대부분을 침잠하는 분위기 속에서 곡 전체를 통해 마치 모든 것을 흘려 보내는 듯한 일관된 분위기를 연출한다. 물론 이는 <Issue> 전체에 시도되는 멜로디의 형식 실험을 포함해서다. 다른 곡들이 그런 것처럼, ’Zero'역시 곡 도입부부터 기타로 연주하는 반복적인 멜로디를 제시한다. 그리고, 이 멜로디는 중반에 마치 후렴구처럼 제시되고, 곡 후반에 현악기를 통해 다시 반복된다. 도입부에서 임팩트있는 훅 역할을 했던 멜로디가 후렴구가 되고, 다시 곡을 마무리하는 형식 파괴를 하는 셈이다.
특히 이 기타 연주는 앞서 언급한 곡들보다 효과적으로 곡에 녹아 들어간다. ‘Victim'이 후렴구의 멜로디를 강조하기 위해 곡의 전개 자체를 바꿔야 했던 것과 달리, ’Zero'의 기타 연주는 곡 전체의 흐름과 자연스럽게 조화되기 때문이다. ‘Zero'는 현악기의 연주가 등장하기 전까지 계속 사운드를 차근차근 변화 시키면서 일관된 흐름을 연출한다. ’엄마 내겐 이 삶이 왜 이리 벅차죠....‘부분에서 기타 연주의 반복으로 진행된 사운드는 ’왠지 모를 난 안도의 한숨을...‘에서는 같은 흐름의 드럼연주에 이은 베이스의 참여로 변하고, 이렇게 하나하나 쌓인 사운드는 ’내 빛바랜 마음이..‘에서 디스토션 기타를 통해 감정을 터뜨리도록 만든다. 그에 이어지는 기타 멜로디가 효과적인 건 이런 꾸준한 변화를 통해 쌓인 어떤 정서가 끝없이 상승하는 구조를 가진 기타 멜로디와 결합하면서 자연스럽게 클라이막스로 갈 수 있기 때문이다.
특히 ‘Zero'의 1,2절의 전개는 곡의 모든 부분에 임팩트를 주는 다른 곡들과 달리 하나의 ’분위기‘로 통합된 느낌을 준다. 차분하고 어두운 분위기 속에서, 과거와 달라진 자신을 돌아보는 것으로 시작해 ’굿바이‘로 끝나는 가사 내용처럼 차근차근 사운드가 ’차오르도록‘하는 구성은 듣는 사람을 점점 그 분위기에 빠져들게 만든다. 물론 곡이 진행될수록 여러 사운드가 붙으면서 변화하는 것은 일반적인 곡에서 흔히 볼 수 있는 진행이다. 하지만 ’Zero'는 ‘왠지 모를 난 안도의 한숨을...’에서 이펙터로 보컬의 분위기를 어둡게 만들고, 그에 이은 ‘내 빛바랜 마음이..’에서 천천히 곡을 끌어올리는 등 <Issue> 전반에서 자주 사용하는 선명한 대비를 통해 어두운 분위기 속에서도 보다 드라마틱한 효과를 내고 있다. 특히 ‘Zero'에서 반복적인 멜로디는 곡의 분위기를 보다 효과적으로 연출하는 역할을 한다. 'Heffy end'가 그러하듯 ’Zero'의 멜로디 역시 ‘내 빛바랜 마음이 / 내 바램 대로 / 더럽혀진 한줌의 / 재로’처럼 하나의 멜로디를 조금씩 다르게 사용하는 경우가 많은데, 서태지는 이런 짧고 반복적인 멜로디를 오버 더빙과 리버브를 통해 마치 돌림노래처럼 사용하면서 노래가 계속 이어지는 것 같은 효과를 준다. 이는 1,2절 전체가 연속된 하나의 흐름으로 연결되는 듯한 ‘Zero'의 분위기와 잘 어울린다. 이 부분까지만 놓고 본다면, ’Zero'는 따라 부를 수는 없어도 감성적인 코드가 맞는 사람에게는 그 분위기에 침잠해 들어갈 수 있는 곡이었다.
그런데, 서태지는 여기서 말 그대로 독특한 선택을 한다. 곡 전체가 하나의 흐름으로 연결되면서 반복된 멜로디와 사운드를 통해 분위기를 서서히 상승시키는 ‘Zero'를 끝내기 위해서는 확실한 마무리가 필요하다. 그렇지 않으면 ’Zero'는 계속 반복적인 느낌을 주기 때문이다. 그리고, 이런 곡을 끝내는 방법이 어떤 것인지는 이미 숱한 팝 음악에서 보여준 바 있다. 혹은 서태지 본인이 작곡한 ‘슬픔 아픔’만 봐도 어떻게 곡을 끌고 가야 할지는 알 수 있다. 2절 후렴구의 기타 연주에 이어 기타 솔로를 전개해 계속 상승하는 분위기에서 곡을 페이드 아웃시켜도 되고, ‘Zero'의 후반부에 나오는 ’어쩌면 다 모두 다 같은 꿈...‘같은 멜로디를 그대로 사용하면서 곡을 한단계 끌어올려도 됐다. 그러나, ’Victim'이나 ‘10월 4일’이 그러하듯, ‘Zero'는 그 순간 곡을 ’0'에서 다시 시작한다. 그것도 아예 곡을 끊고 새롭게 시작하는 식이다. 'Zero'의 2절 뒤 현악기 연주가 나오는 순간 곡의 사운드는 다른 두 부분을 합쳐 놓은 것처럼 끊겨 있다. 이건 수사적인 표현이 아니라 있는 그대로의 사실이다. 2절 후렴구의 기타 연주의 파장이 다 끝나기도 전에, 이 곡은 그 단절을 그대로 보여주면서 현악기가 등장하는 부분으로 넘어간다.
이런 식의 전개가 노리는 효과는 분명하다. 기타솔로로 연주되던 멜로디가 오케스트라 편성으로 바뀌면서, ‘Zero'는 일반적인 흐름으로는 도달할 수 없었던 큰 스케일의 곡이 된다.
이런 전개는 실질적으로 ‘Zero'의 일부라 할 수 있는 ’Outro'의 고요한 전개와 맞물려 ‘Zero'를 대곡처럼 들리게 할 수 있다. 또한 ’Victim'이 그랬던 것처럼, 간주 부분부터 사운드를 통해 기승전결의 구조를 새롭게 쌓아 다시 한 번 절정으로 치닫는 전개는 듣는 사람에게 확실한 임팩트를 줄 수는 있다. 적어도 ‘Zero’를 들은 사람이라면 후반부는 확실하게 기억에 남을 것이다. 그러나, 계속 언급하지만, 기억에 남는 것과 좋은 것은 다르다. 특히 ‘Zero'는 곡이 내세우는 기타 멜로디가 상징하듯, 하나의 일관된 흐름 안에서 곡이 계속 상승하는 구성이다. 그런데 굳이 그 흐름을 깨고 후반부의 전개를 그렇게 끌고 가야할 필요가 있었을까. 간단하게 비교해, ’MOAI'에서는 이렇게 곡을 끊지 않고도 온갖 소리들이 연결되지 않는가. 물론 그렇게 따지면 <Issue>가 있었기에 <MOAI>가 있다고도 할 수 있지만, 그 당시로서 'Zero'는, 그리고 <Issue>는 음악적 이상과 현실이 많이 어긋나 있었다.
매년 내 방문 기둥에 엄마와 내가 둘이서 내 키를 체크하지 않게 될 그 무렵부터
‘Zero'와 비교한다면, ’로보트‘는 그 차이를 최대한 좁힌 곡이다. ’로보트‘는 ’Zero'처럼 대 곡 지향으로 가지 않는 대신, 곡의 내적인 변화에 집중하면서 오히려 곡을 스펙터클하게 느끼도록 연출한다. 이 곡이 1절과 2절에서 보여주는 사운드 변화를 보라. ‘난 아직 사람의 걸음마를 사랑하는 건 잃어버린 내 과거의 콤플렉스인가....’에서 이 곡의 리듬 파트는 드럼에 이어 그와 비슷한 톤의 리듬 프로그래밍, 다시 드럼과 베이스로 이어지면서 곡의 전개에 변화를 주고, 베이스의 변화는 다시 ‘더 이상 내겐’에서 디스토션 기타를 통한 사운드의 증폭으로 이어진다. 이 유연한 변화가 있기에 ‘사람 냄새가 없어 만취된 폐인에’에서 기타가 멜로디를 하나하나 대응하며 연주하는 것이 자연스럽게 느껴진다. 특히 곡의 흐름을 조절하는 유연한 베이스 연주는 ‘로보트’를 한 없이 작게도, 다시 크게도 만드는 역할을 한다. ‘오늘도 내 악취에 취해...’에서 곡을 부드럽게 연결하는 베이스가 그 뒷 부분에서 곡의 스케일이 커지는 것을 자연스럽게 만든다.
또한 ‘로보트’는 곡의 구조에 있어서도 멋있는 수미상관을 이룬다. 멜로디만으로 본다면, ‘로보트’의 ‘매년 내 방문 기둥에 엄마와 내가 둘이서 내 키를 체크하지 않게 될 그 무렵부터 나의 키와 내 모든 사고가 멈춰버린 건 아닐까’는 <Issue>의 하이라이트다. 이 부분은 짧은 시간 안에서도 드라마틱한 기승전결의 구조를 갖추고 있을 뿐만 아니라, 그것을 오히려 점점 하강하는 분위기를 통해 곡의 시작부터 ‘로보트’의 처연한 분위기를 만들어낸다. ‘매년 내 방문 기둥에 엄마와... 무렵부터’가 서서히 곡을 끌어올리는 반면, 그것을 이어 받는 ‘나의 키와...’는 점점 하강하면서 일종의 안티 클라이막스를 만들어낸다. 물론 여기에 ‘멈춰’에서 보컬에 힘을 주며 한 차례 임팩트를 주는 것도 잊지 않는다. 그래서 이 멜로디는 곡의 도입부에서는 강한 인상을 남기면서도 차분하게 1절을 연결해주는 역할을 하고, 마지막에는 마치 스산한 바람 속에서 갈 길을 잃고 헤메는 어떤 존재의 쓸쓸함을 보여주듯, 너무 격정적이지 않으면서도 곡의 후반부에 또 하나의 하이라이트를 만들어준다. 그리고, 그 정서는 더 이상 ‘사람 냄새’가 나지 않는 자신에 대한 괴로움으로 가득찬 ‘로보트’ 속의 자아가 가지는 방황, 혹은 쓸쓸함과도 연결된다.
그런데, 문제는 이 멜로디가 도입부에 이어 다시 마지막에 쓰이기 전까지 어떤 과정을 거쳤느냐다. 처음부터 끝까지 록 밴드 편성(+리듬프로그래밍) 안에서 유연한 흐름을 보여주는 ‘로보트’에서, 잠시 정적이 흐르는 순간이 두 번있다. 바로 ‘혼탁한 바람에...’가 등장하는 부분이다. 이 부분이 등장하기 전, ‘로보트’는 잠시 곡의 흐름을 중단하고 강하게 상승하는 ‘혼탁한 바람에..’가 등장할 준비를 한다. 물론 다음 부분을 강조하기 위해 잠시 연주를 중단하는 것은 곡을 보다 드라마틱하게 끌고 가기위한 장치다. 문제가 되는 것은 ‘혼탁한 바람에..’의 멜로디 그 자체다. ‘Zero'에서 현악기가 등장하기 전, 그리고 ’로보트‘에서 이 멜로디를 제외한 다른 부분에서 두 곡은 마치 곡 전체가 유기체처럼 자연스럽게 변화한다. 서태지의 팬들 중 <Issue>가 처음 발표됐을 때 곡이 끊임없이 반복되는 듯한 느낌을 받았다고 한 경우가 꽤 있었는데, 이는 <Issue>의 모든 곡들이 멜로디의 형식 파괴와 함께 그 안의 사운드들이 정교한 변화를 통해 곡을 하나로 연결하려 했기 때문이다. 어떤 멜로디가 나오든 사운드가 연결되고(그 완성도에는 각각의 차이가 있지만), 거기에 도입부나 후렴구로 쓰였던 멜로디들이 다른 방식으로 다시 활용되다 보니 곡이 끝없이 반복되는 것 같은 느낌을 받을 수 있고, 그것이 <Issue>의 특징 중 하나라고도 할 수 있을 것이다. 특히 정교한 사운드의 변화를 보여주는 ’로보트‘는 그 순환구조가 보다 뚜렷하게 드러나면서 도입부의 멜로디가 마지막에 반복되는 것으로 클라이막스를 만든다.
그러나, 이 곡에서 ’혼탁한 바람에...‘는 유독 그 변화에 포함되지 않는다. 대신 이 멜로디는 곡의 흐름을 단절 시킨 뒤, 갑자기 고음의 서태지의 보컬에 코러스를 덧 붙여 순간적인 임팩트를 강조한다. 물론 그 자체가 잘못된 것은 아니다. 곡에 따라 그런 전개는 얼마든지 가능하다. 하지만 ’로보트‘에서는 그 부분을 다르게 가져가는 편이 나았을지도 모른다. 그 증명은 ’로보트‘가 스스로 하고 있다. ’로보트‘에서 ’혼탁한 바람에...‘의 멜로디는 두 번 쓰인다. 한 번은 1절에 후렴구로 들어가고, 다른 한 번은 간주 뒤에 클라이막스로 사용될 때다. 그런데, ’로보트‘에서 이 멜로디가 제 역할을 다하고 있는 것은 후자다. 멜로디가 순식간에 임팩트를 주면서 상승하는 ’혼탁한 바람에..‘같은 멜로디는 그 앞에 깔린 간주처럼 그 대비 효과를 이룰 수 있는 전개가 필요하다. 기승전결이 충분히 갖춰진데다 기타 연주를 통해 드라마틱한 연출까지 하는 앞의 연주가 끝난 뒤, 다시 등장하는 이 멜로디는 곡의 스케일을 한층 성장시킨다. 반면 1절에는 그만큼 이 멜로디를 뒷받침할 수 있는 전개가 없다. ’Heffy end'처럼 아예 극단적인 대비를 노린 것이 아니라면, 이런 멜로디를 꾸미기 위해서는 그 만큼의 연주와 시간이 필요하다. 아니라면 그 간극을 메울 만큼 엄청나게 디테일한 사운드 변화로 이를 상쇄하거나. ‘로보트’에서 이 부분을 다른 멜로디로 대체했다면 곡은 좀 더 자연스러웠을 것이다. 반면 지금의 ‘로보트’처럼 귀에 확실히 들리는 임팩트는 줄어들었을 것이다. 그 둘 사이의 딜레마가 <Issue>의 딜레마 중 하나이기도 하다. 서태지가 이런 문제를 해결한 건 4년 뒤다.
fucked up music business!
‘Live wire'와 ‘f.m Business’는 <Issue>안에서 그 모든 딜레마를 가장 지혜롭게 해결했다. 만약 극단적인 실험성을 따진다면 <Issue>에서 먼저 언급돼야할 곡은 ‘Heffy end'와 ’로보트‘일 것이다. 다른 점을 제쳐 놓고라도, ’Live wire'의 펑크적인 사운드와 멜로디 전개는 서태지가 ‘Take 6'에서 능숙하게 보여준바 있고, ’f.m business'에서 보여주는 랩과 메틀의 결합은 6집에서 해볼 만큼 해본 사운드다. 그러나, 두 곡은 그런 경험 위에서 다른 곡들보다 빼어난 완성도를 보여준다. ‘f.m business'는 형식상으로 매우 정형화 된 랩과 메틀의 결합처럼 들린다. 물론 그것은 어느 정도 사실이다. 랩 뒤에 강렬한 멜로디가 결합되는 전개가 이미 준비 돼 있는 ’f.m business'에서 서태지가 다른 곡들처럼 여러 시도를 할 여지는 적다. 그러나, 서태지는 그 안에서 재치있는 몇가지 장치를 해두었다. 이 곡에서 2절이 끝난 뒤 등장하는 간주는 완전히 새로 연주한 것이 아니라 도입부에 등장하는 기타 연주를 조금씩 다르게 연주해 늘린 것이다. 물론 그 사이에는 비명 소리를 집어 넣으면서 더 강렬한 분위기를 연출하기도 하지만, 그 기본은 곡의 도입부다. 도입부에서는 폭발적인 시작을 알렸던 연주가 간주가 되면서 폭발적인 후반부를 잇는 역할을 한다. 새로운 멜로디나 이렇다할 편곡 없이 도입부의 기타 연주와 후렴구인 ‘너와 나는 왜 도대체 어떤 목적에 여기서 마주보며...’를 붙이는 것만으로도 앞의 부분들 이상의 폭발적인 흐름이 만들어지는 것은 ‘f.m business'의 묘미다. 서태지는 이 곡에서 곡을 로봇처럼 자기 마음대로 조립해 자신이 원하는 감정들을 표현하고 있다.
이런 전개가 가능한 것은 도입부와 간주에 쓰이는 기타 연주가 이렇다할 솔로 없이 기타 리프의 연결로만 이뤄져 있어 도입부처럼 간주에서도 몰아치는 전개가 가능하고, 동시에 ’너와 나는 왜 도대체...‘가 그 연주의 강렬함 이상으로 더 강력하게 곡을 상승시킬 수 있기 때문이다. ’로보트‘처럼 멜로디가 하나로 이어지는 곡에서 이런 멜로디는 튀어 보이지만, 애초에 랩 + 멜로디의 분절적인 전개로 구성된 곡에서는 멜로디의 선택에 보다 자유로울 수 있다. 특히 ’너와 나는 왜 / 도대체 어떤 목적에 여기서 / 마주보며 노래를 흥정하는 거야 / 썩고만 / fucked up the music business / 그 속에 이 중심에 우린 멍하게 있어‘의 멜로디는 계속 상승하는 사이에 ’썩고만‘, 'fucke up the music business'처럼 강한 악센트를 주기까지 하는데, 거친 디스토션 기타 연주 사이에 순간적으로 강조되는 이런 악센트들은 마치 바람 속에서 노래를 부르는 서태지의 모습을 형상화 시키는 것처럼 강한 임팩트를 만들어낸다. 또한 이렇다 할 기타 솔로도 없이 리프를 계속 연결하고, 랩과 멜로디의 단순한 조합으로 이루어진 이 곡이 지루하지 않게 진행되는 것은 그런 전개 속에서 보여주는 서태지의 재치 때문이라고 할 수 있는데, 서태지는 도입부의 기타 연주에서 리프의 반복과 짧은 멜로디의 연주 뒤에 이어지는 리듬 기타 연주에서 앞 부분을 다시 반복하는 대신 약간 분위기를 상승시키는 멜로디를 첨가(50초 전후)해 곡의 구성에 변화를 주고 있다. 또한 랩 파트의 전반부에서 서태지의 랩을 따라가는 것은 베이스나 드럼이 아니라 마치 기타 솔로를 하듯 화려하게 서태지의 랩 플로우를 되풀이하는 기타 연주다. <MOAI>에서 ’T'IKT'AK'이 그러하듯, 자신이 지금 이 순간 시도하는 것들을 정형화된 틀 안에서 보다 능숙하게 쓴 셈이다. 별다른 프로모션을 하지 않은 'f.m business'의 기타연주가 서태지의 ‘토스카’ CF에 쓰인 것을 비롯해, 여전히 대중적인 생명력을 이어가는 데에는 이유가 있다.
즐겁게 뛰어라
하지만 <Issue>의 완성판은 ‘Live wire'다. ’Live wire'는 서태지가 <Issue>에서 원했을 듯한 거의 모든 것들이 들어 있다. 이 곡은 모든 순간에 임팩트를 주고, 어지간한 사람은 한 번 들어 외우지 못할 복잡한 구성을 갖고 있으며, 순식간에 다른 박자가, 혹은 다른 사운드가 들어가면서 변화무쌍한 전개를 보여주기도 한다. 하지만 서태지가 ‘Live wire'에서 그럴 수 있는 건 오히려 변화보다는 일관성 때문이다. 물론 ’Live wire'는 처음부터 끝까지 계속 곡을 변화 시킨다. 하지만 이 곡의 뼈대를 이루는 것은 단 하나, 엄청난 스피드의 리듬이다. ‘Live wire’의 도입부부터 ‘도대체 너희가 뭔데...’까지 이어지는 사운드의 전개를 확인해 보라. ‘도대체 너희가 뭔데...’에 깔리는 기타 연주는 사실상 도입부부터 계속 이어진 것이다. 다만 그 형태가 넓은 파장을 들려주는 디스토션 기타 연주에서 다시 좀 더 거칠고 폭이 좁은 디스토션 기타로, 다시 멜로디가 보다 선명하게 드러나는 기타 연주에 이어 1절에서 그 리듬만 남긴 연주가 계속된다. 사운드의 볼륨을 줄이면서 곡은 더 빠르고 경쾌한 느낌을 주고, 거기에 멜로디가 들어가면서 다음 단계로 들어간다. 이 곡이 자꾸 변박을 통해 곡의 전개를 바꾸고, ‘상쾌한 내 샤워같은 소리...’에서 정말 시원하게 터지는 디스토션 기타의 효과가 극대화 될 수 있는 건 이 일관된 스피드 때문이다. 물론, 이 스피드를 그대로 유지하면서 곡을 끌고 가기 위해서는 그 속도감을 다양한 방식으로 변주하는 사운드의 변화가 필요하다. 그 점에서 ‘Live wire'는 ’MOAI'의 프로토 타입이라고 할 수도 있다. 어떤 일관성에 의해 움직이는 곡이지만, 그것이 세밀한 사운드의 변화를 통해 다양한 구성을 보여준다. 곡 중반부에 디스토션 기타의 파장이 사람들의 함성 소리로 바뀌는 부분은 이런 시도를 가장 쉽게 확인할 수 있는 부분이다. 물론 아직 그 변화가 정교한 수준은 아니지만, 거칠게 몰아 붙이는 ‘Live wire'의 흐름 안에서 함성 소리는 분위기를 띄워주는 역할 정도는 충분히 하고 있다. ’Live wire'에서 도입부 역할을 했던 ‘이젠 설렌 마음이 내게 다시 시작되는 걸 느껴...’가 다시 곡의 마지막에 등장하면서 자연스럽게 곡을 마무리할 수 있는 것은 그만큼 이 곡의 전개가 자연스러웠음을 보여준다. 또한 서태지는 이 곡에서는 도입부의 멜로디를 반복하는 것에서 그치지 않고 ‘오늘을 반드시 우리의 독립기념일로 나 만들겠어’를 덧붙이기도 한다.
다시 말하면, ‘Live wire'는 모든 것이 자연스럽고, 부담스럽지 않다. 즐겁게 달리겠다는 하나의 정서를 끝까지 가져가고 있고, 그것을 어떻게 하면 재미있게 변주할 수 있을 것인가에 초점을 맞춘다. 여기에는 임팩트를 주기위한 어색한 변화도 없고, 매 순간 멜로디를 강조하려고 하지도 않는다. 또한 그렇다고 해서 이 곡의 스피드를 ’서태지 식‘으로 소화하는 집중력을 잃어버리지도 않았다. 말 그대로 상쾌하게 사운드 샤워를 즐기기 위한 좋은 공연 같은 곡이다. 물론, 그렇기 때문에 ’Live wire'는 서태지의 전작들, 특히 ‘Take 2'같은 곡에서 보여준 어떤 성취, 혹은 깊이에 도달하지는 못했다.
이슈들을 뒤로 한 채
하지만 그 때 서태지에게 어울리는 것은 ’Live wire'같은 음악이었던 건지도 모른다. 그 때 서태지는 미묘한 위치에 있었다. 그가 4년만에 돌아오는 사이 음반 시장에는 더 이상 100만장을 판매하는 슈퍼스타는 사라졌고, 서태지의 영향력 역시 줄어들었다. 매스 미디어는 여전히 그를 ‘문화 대통령’이라고 수식했지만, 그의 라이프 스타일은 한국 사회의 맥락과 조금씩 거리를 두기 시작했고, 서태지의 팬, 혹은 서태지에게 직접 돈을 지불하는 사람들은 이른바 일반 대중과 확연하게 분리됐다. 모두에게 인정을 받아야 하는 영웅과 독특한 라이프 스타일을 가진 개인 사이, 혹은 서태지의 중요한 ‘코어’인 팬과 그 주변부인 대중 사이. ‘Live wire'라는 그 즐거운 곡에서도 ’쿠데타‘와 ’독립 기념일‘을 외치고, 뮤직비디오에서 ’음악 혁명‘의 대장이 돼야 했던 그 때의 서태지. 그건 마치 불안하기 때문에 남에게 더욱 확신의 모습을 보여주는 사람을 보는 것과 비슷한 느낌이었다. 그 전에도 이미 서태지는 충분히 자신을 잘 드러냈는데 왜 모든 방법을 동원해서 자신의 목소리를 ’들리게‘ 하려고 했던 걸까. 물론, 이것은 추측일 뿐이고, 실제로 그렇다 하더라도 그것이 서태지의 음악에 어떤 영향을 미쳤는지는 증명할 수 없다 (인터뷰 한 번 안 되려나. 흑). 다만, 내게 <Issue>는 모든 것을 다 하고, 모든 것을 다 담은 것처럼 보이지만, 사실은 그 속에서 명확한 방향을 찾지 못한 것 같은 앨범이었다. 그리고, 그건 내가 4년만에 리뷰를 쓰는 것에 대한 변명의 구실이기도 하다. <MOAI>에서 서태지가 그 순간을 지났음을 보여준 뒤에야, 나는 이 앨범을 괴롭지 않게 다시 들을 수 있었다.
글 : 강명석([email protecte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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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view - 서태지 7집 (강명석)
